세계속의 한국법과 인터넷법
박 균 성(경희대 법대 교수, 한국인터넷법학회 회장)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우리나라가 곧 경제적 측면에서 선진국으로 안착할 희망도 갖게 한다. 그런데, 정치, 사회의 선진화가 이루어졌는지에 관하여 본다면 그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최근 외국을 자주 갈 기회가 있었다. 외국여행에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에 대한 선진국 국민의 인식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4년 이래 3번에 걸쳐 사법연수원 공법학회와 함께 프랑스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2002년 가을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하였고, 금년 2월에는 프랑스에서 초청교수로서 강의할 기회도 가졌다. 프랑스에 갈 때 북경, 프랑크푸르트 또는 뮌헨 공항을 경유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대한 선진국의 이미지 개선은 1988년 올림픽 개최가 그 시발점이었고, 1996년 OECD 가입, 1997년 이후의 민주화, 최근의 삼성, LG 등 전자제품의 질 제고와 판매 확대가 크게 기여하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럽에서 박지성과 이영표, 설기현 등 축구스타의 탄생도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금년 2월 프랑스 엑스-앙-프로방스 법과대학의 초청으로 특강을 하면서 문화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엑스-앙-프로방스 법과대학과는 깊은 인연을 맺어 오고 있는데, 1991년과 2002년에도 초청교수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법과대학 교수나 학생이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무관심하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금년 2월 초청교수로서 강의를 하면서 큰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만나는 교수들이 전과 달리 한국에 관심을 보이며 교류를 희망하였고, 학생들도 강의에 많이 참석하여 열심히 듣고 질문도 활발히 하는 놀라운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이제 프랑스의 지식인 그룹에서도 우리나라과 우리나라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세계에서의 한국법의 자립과 국제사회에서의 한국법의 자리매김이 요구된다고 본다. 그 동안 급속한 경제발전 및 사회발전에 맞추어 법제도를 빨리 근대화하기 위하여 외국법을 수입하기에 급급하였지만, 이제는 “우리의 법”인 한국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는 한국법을 세계에 내놓고, 후발국가에 우리의 입법경험을 나누어 줄 단계인데, 이를 위하여는 우리의 법을 제대로 정립해두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우리나라에 고유한 법을 만든 예도 없지 않다. 행정심판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의 행정심판법은 현재에는 세계에서 그 예를 ?아 보기 힘든 독특한 행정심판제도를 탄생시키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이를 거의 그대로 도입하고자 하는 주장과 시도가 적지 않다. 외국의 입법례를 참조하는 것은 유사한 법적 문제에 관하여 고민 끝에 해결책을 도출하여 놓은 지식자원을 활용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배척할 것은 아니고, 유용한 경우도 많다. 현재에도 입법준비단계에서 선진 주요 국가 특히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입법례를 조사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외국의 입법례 조사와 관련하여 좋은 법을 만듦에 있어 외국의 입법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외국의 입법례 조사는 낭비가 된다. 무비판적인 외국법의 도입도 지양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입법에 있어 외국의 입법례의 참조는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참조할 외국의 입법례가 있는가? 이 외국의 입법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는가? 외국의 입법례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데에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비추어 수정할 부분은 없는가? 하는 점에 관하여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법은 우리에게 도전이며 세계속에 우리나라의 법을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인터넷법은 우리나라를 선진 외국법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국가에서 입법자립국, 입법례의 제공국 내지는 법제도의 수출국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법은 독특한 법분야로서 기존의 오프라인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터넷은 최근 새롭게 발전하는 분야이고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서 선발주자의 하나이기 때문에 참조할 외국의 입법례가 많지 않은 분야이다. 인터넷은 그 태생이 민간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자율규제가 강하게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는 자율규제에 앞서 있는 미국이 인터넷을 주도하고 있다는 데에도 기인한다. 종래의 정부규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법제도로는 그 규율이 적절하지 않은 분야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규제가 주이고 자율규제가 생소하며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 미국에서와 같이 자율규제 중심으로 갈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의 속도며 그 접속율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이용에서 앞서 있기 때문에 제기되는 여러 법적 문제는 외국에서는 제기되지 않는 문제도 적지 않고, 외국에서 동일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그 심각성에서 차이가 있거나 또는 그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국의 입법례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대화와 타협이 잘 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이로 인하여 법제도 없이도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법이 없이는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연유로 인터넷분야에서 입법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입법례가 없거나 외국의 입법례가 있더라도 그대로 도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가 만들었거나 만들고자 하는 인터넷 관련 법령을 선진 외국에서 조차 관심을 갖고 보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법은 인터넷산업 및 정보사회의 발전에 기반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터넷 법령의 적기 정비는 인터넷 관련 산업의 발전에 긴요한 것이다. 한 예로 인터넷TV(IPTV)를 들 수 있다. 방송·통신 융합에 관한 법령이 정비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발전된 인터넷 TV기술과 DMB 기술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고, 이에 관한 산업의 발전이 저지되고 있다.
그 동안 국가와 사회의 정보화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많은 법률이 제정되고 개정되었다. 정보통신법 기반을 구축하기 위하여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위시하여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주소자원관리에 관한 법률, 전자서명법, 전자거래기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전자정부법,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온라인디지털컨텐츠산업발전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지식정보자원관리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 정보시스템의 효율적 도입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이러닝(전자학습)산업발전법 등이 제·개정되었다. 이러한 법들은 그 형식, 적용범위, 규제방식 및 규제내용에 있어 나름대로 선진외국의 입법례와 다른 독특한 법제도로 정립되어 있다.
최근에는 제한적 인터넷본인확인제, 명예훼손분쟁조정제도가 법제화되었고, 통방융합에 관한 입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그리고,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분법화하는 방안,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강화·합리화하는 방안, 인터넷 언론, 인터넷 여론조작에 관한 법적 규제방안, 원격진료에 관한 법령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터넷기술과 인터넷환경에 대응하여 법제도가 신속하게 정비될 것이 요청되고 있는 반면에 인터넷법에 관한 전문가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입법전문가 특히 인터넷법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6월 8일 “정보화사회에서의 주요 법적 문제와 법령정비 과제”라는 주제로 한국인터넷법학회가 법제처 그리고 한국법제연구원과 함께 관·학·연 공동학술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하루 속히 한국법이 세계 여러 국가에서 참조할만한 독자적인 법으로 평가받고, 세계 각 국의 법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바람직한 한국법제의 정립을 위하여 법제지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또한 이를 기대한다.
* 본 연구자료는 법제처에서 발간한 월간법제 7월호에 기고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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